월간 마음의 언어


A.A. 멤버들의 소중한 경험담

이 책자는 단주 생활과 12단계 프로그램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소중한 경험담을 월간지에 실어 드립니다. 아래 주소로 우편(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20길 6, 정우빌딩 5층   (우) 07307) 또는 이메일 : aakoreagso@gmail.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서랍속의 낡은 어머니의 일기장, 2019년 9월호 中

울산연합 알코올중독자 야음박

제가 모임에 나오고 얼마 안 되어 술을 마셨을 때에는 동전 하나 라도 찾을까 싶어서 어머니방의 서랍을 미친 정신에 막 뒤졌었는데 그때에는 그렇게도 안 보이던 어머니께서 33년 전 아버지를 막 돌아 가시고 떠나보내시면서 쓰신 일기장을 찾고,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남편의 모습은 정말 달라도 많이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정말 남편에 대한 마음 그리고, 이제 혼자 어린 아들, 딸을 돌보아야 한다는 마음 등등 정말 마음이 아팠고, 저는 술로 떠나보낸 아버지를 미워했고, 아니 증오했고 어머니는 저보다 더 하실꺼라 생각했는데 이 일기장을 보며 우리 어머니께서 우리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느끼며 저희에 대한 사랑도 정말 그 깊이를 모를 정도로 대단한 것이구나. 다시 새삼 느끼며 저의 잘못된 생활과 생각 때문에 알코올중독자인 인생을 살아가는 아들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하는 마음에 오늘 하루도 술을 안마시겠다는 결심과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하루하루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반성하며 참회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부터의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일기입니다.

1986년 6월 20일(음력 5월 14일)

뜻밖의 아빠 죽음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될까? 그 이의 마지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마지막 그이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그이를 떠나보냈다. 그이는 술을 많이 마셔도 인간성이라든지 사나이의 의리를 지키는 분은 그이 뿐이라 생각된다. 평상시 당부의 말씀 애들을 훌륭히 키워내겠다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일들을 자식한테 시키려 하던 그이였는데 왜 이렇게 쓸쓸히 떠나갔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이와 잘 그래도 정이 두터운 부부중의 한 쌍 이었는데. 이 꼬무래기 들을(큰 애기 6살, 둘째애기 3살) 어떻게 나 혼자 감당하라고 나 혼자 두고 홀연히 떠나갔었는지. 애들만 없더라도 그이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이가 나를 믿고 간 사람인데 그이의 뜻을 받들어 그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애들을 훌륭히 키워 드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한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내 뜻은 변함없이 평생 애들과 함께 그이가 나를 지켜본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이의 고향에서 고인이 된 그이의 이름 두 글자에 먹칠시키지 않으리라 그이에게 맹세한다. 몇 년전에 그이가 가훈을 가르쳐주었는데 그 가훈에 따라 애들 훌륭히 키워 나아갈 것이다. 여보 아무쪼록 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저 세상에서 나를 지켜 주십시오.

1986년 7월 10일

그이의 재가 끝난 날이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삼재로 끝내기로 했다. 여보,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당신이 살아갈 나라 극락으로 가소서. 무엇보다 당신의 아내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바입니다. 당신께서 편히 계시면 저도 한시름 놓고 애들 잘 돌보고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도 그래야 마음 편하게 우리 애들도 잘 살펴 주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육신은 저 먼 나라 가고 안 계시지만 영혼만은 저 주위를 보살펴 주실꺼라고 확신합니다. 여보, 우리 비록 몸은 떨어져 있다지만 마음만은 떨어지지 말고 항상 저 곁에서 저와 함께 이 지면을 통해서 의논하며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꿈으로라마 당신이 나타나셔서 저에게 꾸지람을 내려 주십시오. 당신을 보고 싶을 때는 사진을 펴놓고 당신과 함께 얘기하며 한 세월을 보내며 당신의 뜻대로 우리 재환, 보희를 잘 키워드리고, 저도 미련 없이 당신의 곁으로 떠나 갈테니 그때까지라도 당신도 홀아비로 지내시다가 다시 저를 아내로 맞아 주십시오. 그때가지 저도 당신을 살아계시는 것 같이 생각하여 항상 당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 갈테니 안심하시고 저와 만날 그날까지 기다리고 계십시오. 저는 당신을 생각하고,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아직까지 재혼이라는 말조차 입에 오르내리기 싫습니다. 그러니 여보, 우리 만날 그날까지 열심히, 열심히 살아갑시다. 여보, 외롭더라도 참으시고 몇 십년 후에 다시 아내로 맞아주십시오. 여보, 우리 그 동안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부부보다 정이 두터웠다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 여보 당신 옷은 다 태워드리고 두루마기와 양복 한 벌은 가지고 와서 옷장에 넣어 두었습니다. 우리 재환, 보희가 철들고 장성하면 그때 떳떳하게 말할 겁니다. 이것은 아빠 옷이라고..... 여보, 오늘은 그만 펜을 놓을까 합니다.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1986년 7월 11일 날씨 흐림

여보, 오늘 삼촌이 오셨더군요. 당신한테 진 빚은 협동조합에서 융자 냈다면서 100만원은 저한테 내 준다고 해서 당신의 뜻대로 재산 하나 축내지 않고 그러기로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제가 감정을 높였더니 삼촌도 신경질을 내더군요. 여보,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 삼촌을 믿고 따라야 하나요? 그렇지 않으면 내 나름대로 생활해 나가야 하나요? 정말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니 도저히 마음놓고 살아갈 수가 없어요. 당신한테 등기된 부동산은 제가 관리하다 당신의 뜻대로 자식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줄려 하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될지? 저는 저 나름대로 당신이 시작해 놓은 장사를 최선을 다해 이끌어 나가 애들의 교육은 내 힘으로 시켜볼 작정입니다. 당신의 부동산은 고스란히 관리하여 재환이, 보희에게 당신의 뜻대로 물려주려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 이제 저승에서 편한 생활 좀 하시라구요. 그렇지만 여보, 전 말을 이렇게 해도 당신이 나를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저승에서 저보다 나은 여자를 만나서 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전 당신만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당신도 내 마음을 좀 헤아려서 저를 좀 보살펴 주십사 하는 부탁 말씀뿐입니다.

1986년 7월 12일 흐림

여보, 요사이는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당신께서 돌보아 주신 덕택인지 하루하루 매상이 제법 오릅니다. 그래도 돈 걱정이 없으니 애들 데리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나 당신 없이 사는 외로움은 말할 수 조차 없습니다. 당신이 너무도 보고파서 요사이는 결혼사진까지 내 걸어놓고는 들어갈 때 마다 쳐다보곤 합니다만 그럴때마다 마음은 찢어질라 합니다. 당신의 그 잘생긴 얼굴, 날씬한 그 체격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의 젊음이 아깝기만 합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6년의 세월 아쉽기만 하다. 이승보다 저승의 생활이 편하길 바라며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사랑이 세상은 달라져도 영원토록 변치 말고 오래오래 고이 간직하기 바랍니다. 당신이 보고 싶을 때는 사진첩을 펼쳐 놓고 짧은 세월동안 있었던 사연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면서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이렇게 펜을 들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정말 당신과 함께 얘기를 나누는 듯싶어 어떤 때는 웃기도 하고, 어리광도 한번 부려보고 싶은 심정인데 옆을 되돌아보면 혼자 앉아 당신과 이 흰 지면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여보, 당신을 정말 보고 싶어요. 꿈에라도 한번 나타나셔서 얼굴이라도 한번 어루만져 주시면서 당신 우리 재환이, 보희 따뜻하게 내 뜻에 어긋나지 않게끔 잘 키워줄라고 부탁이라도 한번 해 주십시오. 당신의 말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어요. 정말, 정말 우리 여보가 보고 싶습니다.

1986년 7월 23일

여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니 삼촌이 이렇게 섭섭할 수가 있습니까? 내가 혹시 당신 재산 챙겨 탕진이나 하지 않을까 싶어 늙은 엄마를 상속하는데 가등기를 올리자 하는 것을 못 한다고 하니 아니면 내가 할까요 하는 것을 그것은 더 이상 되지 않는다고 펄쩍 뛰었어요. 그러면 꼭 형수 고집대로 하고 양보하나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당신 상 치르는데 2,000만원 빚진 것 때문에 점포를 팔자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그것은 내 의사를 잘 따랐는데 왜 이번에는 양보를 하지 않느냐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사법서사께나 다른 모든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재산 빼앗기는 것 한 가지라고 해서 저도 결심을 했어요. 다른 모든 사람은 어떻게 말하든지 재환이 내 앞으로 해서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당신이 아끼고 아끼시던 그 재산만은 영원히, 영원히 간직할게요. 그러니 여보, 날 믿고 재환이, 보희만을 보살펴 주십시오. 참, 여보 오늘 바로 삼촌 속마음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너 재산인가? 엄마, 아버지 빌린 재산이지. 인간이면 인간 대접할 때 알아들어라.”는 등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뱉고 갔습니다. 당신이 안 계신 마당에 부모, 형제가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전 여보, 재환이, 보희, 저 셋뿐이라고 생각하며 알뜰살뜰히 보살펴 몇십년 후에는 보란 듯이 애들 키워 놓는 것입니다. 삼촌이 한번 와서 이렇게 해놓고 가면 몇 번씩 장사도 하기 싫고, 밥도 넘어가지 않아요. 한숨을 쉬다 생각해보면 이러다 내 자식은 어떻게 되나싶어 다시 눈물을 씻고 용감하게 살아가리라 다짐을 해 봅니다. 당신이 늘 하신 말씀 첫째, 남한테 속지 말고 살아라. 하신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가지 않고 무슨 일에 부딪히더라도 그 말이 먼저 머리에 떠올라 일을 할 때면 더욱 심사숙고 해진답니다. 저도 6년 전에는 숙맥이었는데 당신과 생활 6년 만에 당신께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당신의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 뜻이 있었다 싶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잔소리로 들리더니 그때 그런 말들을 안 했더라면 요사이 살아가는데 강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이 못했던 일들을 우리 재환이한테 시켜 놓겠습니다. 오늘도 재환이한테 “아빠께서 너 뭘 하라고 하시더라.” 했더니 “장군” 말을 또렷하게 말하더군요. 여보, 우리 전 당신 믿고 당신은 저를 믿고 한 평생 살아갑시다. 여보, 전 재산이 어떻게 풀려서 돈이 좀 된다하더라도 그 재산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저 힘이 다하는 데까지 제 힘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말했듯이 재산이 있어도 남한테 내색하지 말고 언제나 검소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새기면서 언제나 내 마음 변치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여보, 당신이 계신다면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말씀드리겠지만 이 지면으로 통해 속에 있는 말을 다 못하겠어요. 여보 이해하길 바라면서 요즘 당신과 대화가 너무 뜸했지요. 저도 피곤해서 잠자기가 바빴어요. 그러니 당신께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1986년 7월 27일

여보 오늘도 마음 편치 않아 당신 집에 재환, 보희, 엄마하고 찾아갔어요. 산소에는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잘 살아 있더군요. 제가 애들 데리고 그 곳에 가더라도 당신의 말을 들을 수나 있나요. 모습이나 볼 수 있나요. 답답하기만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 좋은 세상에 먼저 가셨나요? 당신한테 갔다 오니 어머님이 오셨어요. 당신한테 같이 가자 구요.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재환이를 방학했다고 집에 데리고 갈려하는 것을 못 데려 간다고 했지요. 방학 때라도 며칠 놀다가 웅변학원에 보내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내 자식을 내가 키우지 할머니께 보낼 필요도 없고 싶어서 전번에 삼촌이 내게 온갖 욕 찌꺼리를 듣고 보낼 필요도 없고 해서 그랬습니다. 삼촌과 있었던 일들을 할머니께 얘기했더니 할머니는 하나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삼촌이 할머니께 이야기 안 할 수 있어요.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면서 내가 어떻게 나오나 삼촌은 오지 못하고 이제 할머니만 휴일이면 왔다 갔다 하지 않겠습니까? 여보, 오늘은 할머니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다음부터는 할 필요가 없지 싶습니다. 할머니도 친 자식편이지 내 편을 들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할머니가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 안 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도 그랬지 않습니까? 당신은 무엇이든지 이야기 하지만 삼촌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 부부끼리 의논하지 할머니께 의논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무슨 말이든지 하지 말기로 했지요. 지금도 저는 이제부터라도 의논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해볼까 합니다.

어머니의 장속의 서랍 속에 있는 낡은 일기장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머님은 33년전 아버지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려고 혼자만의 외로움과 책임감으로 저희 가족들에게 헌신하셨습니다. 전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아니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였지요. 아버지에 대한 미움, 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한 평생 술의 노예로 살았으니 말입니다. 지금도 현재진행중입니다. 하지만 모임이 있어서 오늘 하루도 술 안마시고, 이제는 제 자신에게, 저의 어머니에게 술을 안마시겠다는 약속을 새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